조선인은 돌도끼를 보고 뭐라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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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쿠아스코어 댓글 0건 조회 380회 작성일 24-04-0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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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뇌공

동아시아에서는 뇌공이라는 신이 북을 치고 도끼를 내리쳐 천둥번개가 친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뇌공 라이진

그래서 벼락이친 곳에는 뇌공의 도끼인 뇌부 혹은 뇌설이 있다고 여겼다.





실제로 뇌부 혹은 뇌설이라고 왕에게 진상되기도 했는데 이는 석기시대의 돌도끼 혹은 청동기시대의 청동도끼였다.








뇌설 혹은 뇌창은 돌도끼, 뇌부는 청동도끼로 베개에 넣고 자면 악한것을 물리친다고..










실제 진상된 뇌부




"...이로써 보면 뇌부 뇌설의 유래는 오래된 것이오니 바라옵건대  경중과 외방으로 하여금 널리 찾아보게 하옵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세종 23년 5월 18일-





지난 4월 초1일에 벼락이 치고 큰 비가 내릴 적에 진주에 운석이 떨어져 1척이나 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정병 강계손이 땅을 파고 찾아내니, 빛깔은 뇌설과 같고 모양은 복령과 같았는데, 손톱으로 긁으니, 손톱에 따라 가루가 떨어졌습니다."

하였는데, 하서하기를,

"뇌부에 비할 것이 아니니, 올려 보내지 말라."
하였다.
-성종 23년 5월 16일-




"뇌부40, 뇌창40을 경외에 널리 찾아 바치라."
-연산 11년 5월 8일-




전라도에서 뇌부와 뇌창을 헌납하였다.
-중종 8년 7월 12일-






"함흥부에서는 2월 6일 초혼에 서북방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있었고, 북청부에서는 같은 날에 남쪽에 있는 호망포에서 해질녘에 천둥 같은 소리가 나고 서북방의 하늘 가로부터 1백 보쯤 되는 밭 가운데에 와서 모래흙이 어지러이 섞인 곳에 떨어진 물건이 있는데, 주먹만한 검은 돌 한덩이가 그 가운데에 빠져 들어가 있었으므로 그 돌덩이를 올려보냅니다."

하였는데, 전교하였다.

"이 돌덩이는 내의원을 시켜 보게 하면 반드시 뇌부 따위라 할 것이므로, 그 돌덩이는 내리지 말라."
-중종 24년 2월 20일-





궁궐에 벼락이 쳐 공장 한 사람이 죽었다. 
(중략) 왕이 말하기를 "옛 방술에 이르기를, 벼락맞은 곳엔 반드시 뇌부가 땅 속에 파묻혀 있는데 그것을 갖게 되면 사기를 피할 수 있다 하였다."고 하고는 내관에게 명령하여 파보게 하였으나 얻지 못하였다.
-광해 14년 7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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